
'동네 한 바퀴' 이만기가 인천광역시 부평구와 연수구의 열우물마을, 부평문화의거리, 80년 전통 중국집, 공예명장 공방, 청년 양조장, 부평지하호, 민어 전문점, 러블리페이퍼 등을 차례로 방문하며 옛 기억과 현재를 잇는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본 여정이다.
바다와 육지, 시장과 신도시가 맞닿은 길목에 다채로운 삶이 모여든 도시, 인천이다. 오래된 마을의 기억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골목 곳곳에 나란히 남아 있는 쉼과 연대의 공간이다.

자신들이 진정 원하는 길을 선택하고 희망찬 내일이 있기에 하루를 바삐 사는 사람들의 인생을 조명하는 시간이다. KBS 1TV '동네 한 바퀴' 377회는 지역의 눈부신 풍경 뒤로 굳건한 꿈을 품고 제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이웃들의 삶을 차분히 들여다본 방영분이다.

마르지 않는 정, 열우물마을, 마지막 달동네, 공동체의 기억
마지막 달동네로 불렸던 열우물마을은 이름부터 오래된 삶의 자취를 깊게 품고 있다. 한때 크고 작은 우물 열 개가 있었던 이곳에서 사람들은 물을 길으며 하루를 열고 서로의 삶을 나눴다.

달동네의 풍경은 대부분 사라지고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윗열우물마을에는 아직 옛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양지우물 곁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골목에는 오래된 마을의 말투와 정이 스민다. 달라진 풍경 아래에서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공동체의 기억을 마주한다.

상인들이 살린 가치, 문화의거리, 6.25 전쟁 직후 노점상, 자발적 노력

이 거리를 오늘의 모습으로 만든 것은 상인들의 하나 된 힘이었다. 약 30년 전부터 상인들은 자발적으로 기금을 모으고 거리 정비에 나섰다. 무대를 세우고 거리를 가꾸며 전통시장과 지하상가, 젊은 상권을 잇는 생활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부평의 한 골목에는 1945년 문을 연 뒤 한 가족이 3대째 짜장면 가게를 이어오고 있는 오래된 중국집이 있다. 1대 창업주의 자리를 2대가 지켜왔고, 현재는 3대 이장제 씨가 주방을 책임지며 오랜 시간 장사의 기본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채소를 넉넉히 넣어 식감을 살리고 직접 면을 반죽해 뽑아내는 간짜장이다. 재룟값이 올라도 기준을 낮추지 않고 담백함을 굳건히 지켜왔다. 3대가 지켜온 짜장면 한 그릇에는 가족의 시간과 골목의 기억이 함께 담겨 있다.

신촌공예공방거리, 궁중 자수 장인, 인천 제5호 공예명장, 아낌없는 나눔
부평 신촌공예공방거리에는 오랜 세월 바늘과 실로 궁중 자수의 맥을 이어온 인천 제5호 공예명장 이종애 씨가 있다. 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자수는 오랜 시간 궁중의 격식과 미감을 품어온 전통의 한 갈래로 빛난다.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 시작한 바느질이었으나, 지문이 닳도록 바늘을 쥐고 살아온 시간 끝에 인천을 대표하는 공예명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공방 문을 열어두고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재룟값만 받으며 무료로 기술을 가르쳐주는 명장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수제 맥주, 연수구 청학동 골목 양조장, 인천 자연 벚나무 보리수 효모, 새로운 맛
인천 연수구 청학동의 작은 양조장에서는 김관욱 씨가 자신만의 맥주를 빚어낸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양조를 배운 뒤 고향으로 돌아와 번화가 대신 골목을 선택해 오래 머물며 맥주를 만들어간다.

벚나무 열매와 강화도의 보리수 열매에서 효모를 채집해 긴 분석을 거쳐 세상에 하나뿐인 향과 맛의 맥주를 완성한다. 지역 고유의 자원을 활용한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발전시켜 자신만의 양조 철학을 구체화하며 인천의 새로운 맛을 선보인다.

함봉산에 묻혀 있던 기억, 부평지하호, 일제강점기 징용, 무거운 시간
일제강점기 말 전쟁 체제 아래에서 조성된 부평지하호가 오랫동안 땅속에 가려져 있었다. 한 시대가 도시를 어떻게 이용했고 조선인을 어떻게 동원했는지 명백히 보여주는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최근 일본 방위성 극비 문서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조병창 지하호 공사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참상이 낱낱이 드러났다. 평범한 도시 일상 아래 묻혀 있던 무거운 시간을 돌아보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얼굴을 되새긴다.

민어 식당, 18년 맛집 내공, 수컷 대형 민어, 얼음 숙성
인천에서 18년째 민어 전문점을 운영하는 김중수 씨는 일 년 중 가장 좋은 민어를 만날 수 있는 산란기를 앞두고 바쁜 나날을 보낸다. 값이 비싸도 6~9kg에 이르는 수컷 대형 민어만을 엄선해 훌륭한 식감과 감칠맛을 끌어올린다.

내장을 제거한 민어를 얼음 속에서 가장 좋은 상태가 될 때까지 5년의 연구 끝에 완성한 숙성 방식을 적용한다. 횟집에서는 쫀득한 민어회부터 오랜 시간 고아 낸 진한 보양식 민어탕, 턱살과 볼살을 활용한 머리찜까지 18년 내공의 민어 한 상을 정성껏 차려낸다.

자원재생활동가, 최고가 매입 폐지, 기우진 대표, 종이 캔버스 부활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는 대한민국에서 폐지를 가장 비싸게 사는 청년이다.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에게 일반 시세보다 6배 높은 값으로 매입하며, 이들을 자원재생활동가로 존중해 노동의 가치를 드높인다.

어르신들에게서 매입한 폐박스는 작가들의 손을 거쳐 아름다운 종이 캔버스로 재탄생하고, 전시와 판매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얻는다. 수익은 다시 어르신들의 일자리와 지원으로 이어지며, 사람과 자원이 선순환하는 기적의 길을 활짝 열어간다.

주저 없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단단하게 선택해 아픔을 말끔히 씻어내고 온몸으로 일상을 사랑하며 묵묵히 자신만의 삶을 가꾸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이 지역 골목 곳곳을 훈훈하게 물들인다.
'동네 한 바퀴' 377화 방송시간은 4일 밤 7시 10분이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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