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조이ㅡ1 [bnt K-아티스트|조이 알브라이트①] 무대가 두려웠던 소년, 배우의 꿈은 놓지 않았다

아홉 남매의 식사를 만들던 소년에서 한국의 배우가 되기까지…주방과 대학, 새벽 세 시 연기 수업을 지나온 시간
김민주 기자
2026-10-26 1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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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bnt news)



열한 살 소년은 무대보다 무대 뒤에 먼저 익숙해졌다. 지역 극단의 뮤지컬 ‘애니’에 출연하는 어머니를 따라 극장에 갔고, 작품에 등장하는 강아지 샌디를 돌봤다. 그곳에서 조이 알브라이트가 오래 지켜본 것은 배우들이 연습하는 모습이었다. 첫 주에는 없던 인물이 몇 주 뒤 무대 위에 서 있었다. 반복하고 고쳐보는 시간 끝에 사람이 달라지는 과정이 신기했다.

정작 자신은 관객 앞에 서는 일이 두려웠다. 그래서 무대에서 이야기를 온전히 전하는 배우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노력을 가까이서 보았기에, 두려움과 별개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오래 남았다.

배우를 꿈꾸던 소년이 먼저 익힌 일은 요리였다. 아홉 남매가 있는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아버지에게 요리를 배운 그는 열두 살 무렵부터 가족의 음식을 만들었다. 파스타를 끓이고 여러 조리법을 시도했다. 많은 아이를 돌보는 부모님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요리 전문 채널을 보며 셰프들이 솜씨를 겨루는 모습에도 빠져들었다. 집에서는 한정된 예산과 재료로 모두가 맛있게 먹을 음식을 궁리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활도 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요리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연기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던 시절, 그는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요리학교에 가려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신 주방에서 경력을 쌓았고, 언젠가 방송에 출연하는 셰프가 되는 상상도 했다. 요리와 엔터테인먼트, 마음을 끄는 두 가지 일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에는 그 주방의 경험이 낯선 나라에서 생활을 시작하는 발판이 되리라고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배운 요리는 지금도 가족을 잇는다. 아버지를 기억하며 그가 좋아하던 스파게티 조리법으로 음식을 만들고, 자신의 딸에게도 자주 해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돕고 싶어 시작한 일이 이제는 아이와 나누는 시간이 됐다. 배우가 된 뒤에도 요리는 그의 생활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에 처음 도착한 날은 선명하다. 미국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약 6개월 동안 온라인으로 관계를 이어온 뒤 그를 만나러 왔다.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로 공항에서 기다리면서, 믿는 마음 한편으로 정말 마중을 나와 있을까 긴장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낯선 땅을 밟는 순간부터 꿈처럼 느껴졌다.

인천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길에는 아파트와 높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에서는 동대문과 남산타워, 광화문과 궁궐, 시장을 찾아다녔다. 현대적인 도시의 일상 안에 역사가 함께 남아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아시아의 문화와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짧은 방문은 더 알고 싶은 것들을 남겼다.

다음 목적지는 호주였다. 요리 일을 구해 돈을 벌고 현지 요리학교에 다니려던 계획이었다. 그런데 호주에서도 자꾸 한국이 생각났다. 그곳의 생활도 좋았지만 마음은 한국으로 향했다. 그는 다시 돌아와 언어를 배우고 음식을 알아가며 자신의 생활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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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한국어 과정에서 익힌 말은 곧 일터로 이어졌다. 이태원 수지스에서 한국의 첫 요리 일자리를 얻었다. 이미 미국에서 여러 해 일한 경력이 있었지만, 새 주방에서는 익숙한 음식도 그곳의 방식으로 다시 배워야 했다. 샌드위치와 파스타를 만드는 설명부터 동료들이 소통하는 방식까지, 알아들을 것이 많았다.

‘파스타 나왔습니다’, ‘5분 뒤에 나옵니다’ 같은 말도 연습이 필요했다. 키가 187cm인 그에게는 작업대와 조리대 위 후드의 높이마저 새로운 문제였다. 머리를 부딪히고 채소를 손질하려 몸을 낮췄다. 때로는 12시간가량 일했다. 언어와 몸이 함께 적응해야 하는 생활이었다.

그 시간을 돌아보며 그가 먼저 떠올리는 것은 동료들이다. 손님이 몰릴 때의 긴장과 부담을 함께 견디고, 힘든 순간에는 서로 도왔다. 오랜 시간을 같은 주방에서 보내며 가족 같은 유대가 생겼다. 요리가 그립다는 말에는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뿐 아니라 팀의 일원으로 일하던 기억도 담겨 있다.

이후 대학에서 언론·미디어와 일본어·일본문학을 공부하며 관심은 다시 연기로 가까워졌다. 특히 소설을 읽고 영화화된 작품과 비교하는 과제가 좋았다. 글로 읽은 이야기가 시나리오를 거쳐 배우와 감독의 해석으로 살아나는 과정이 궁금했다. 공부하다 막히면 도와주고 새로운 과제를 건네던 교수들은 그가 길을 찾아가는 데 힘이 됐다.

‘런닝맨’ 출연은 카메라 앞의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게 했다. 이광수에게 선택받아 함께 뛰고 딱지치기를 하던 시간,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준 스태프들을 기억한다. 당시에는 어색함을 감추려 멋있어 보이려고도 했다. 지금은 조금 더 편안하게 즐겼어도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방송 이후 학교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다. 전화번호를 묻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 겪는 관심 속에서 그는 뜻밖의 질문을 만났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일일까, 연기하는 일일까. 이후 예능 출연은 신중하게 선택하면서, 작품 속 인물을 만들어가는 일에 더 마음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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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시작점을 알 수는 없었다. 대학 시절 본격적으로 도전할 때는 다른 외국인 배우들과 연결될 기회도 적었다. 책을 읽고 혼자 연습했다. 미국에 갈 때마다 연기 책을 더 사 왔고, LA의 연기 코치가 한국에 오면 워크숍에 참여했다. 생활비와 빚을 갚고 남은 돈은 가능한 한 훈련에 썼다.

LA 시간에 맞춰 새벽 3시에 온라인 수업을 들은 것도 그 무렵의 노력 가운데 하나다.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들과 훈련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대사를 외워 인물처럼 말하면 연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그 말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이해하자 비로소 대사가 더 잘 외워졌다. 혼자 익힌 것을 상대 배우 앞에서 해보는 과정도 필요했다.

첫 촬영에서는 짧은 대사조차 잊을 만큼 긴장했다. 많은 사람의 시선 앞에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카메라에 맞춘 동선과 한국 현장의 용어도 하나씩 배웠다. 가방을 어느 손으로 집었는지 기억하는 세세한 일까지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장면에 집중할 여유가 생겼다.

지금 돌아보면 첫 현장에서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도 있다. 자신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모두 잘해내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긴장하느라 그 응원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다. 감독의 조정을 받고 상대에게 반응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혼자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연기가 함께 발전시키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부모님과 형제를 잃는 아픔을 겪은 그에게 연기는 위로이기도 했다. 주변의 지지가 앞으로 나아가게 했고, 연기에서는 자신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았다. 캐스팅 여부를 모두 결정할 수는 없지만 준비하고 훈련할 수는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오디션 역시 자신의 해석을 보여줄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됐다.

처음 한국에 왔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의외로 더 노력하라는 주문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실패해도, 모든 것을 바로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다음 기회만 바라보다 처음 연기하고 싶었던 이유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열한 살에 무대 뒤에서 지켜본 배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그는 그 과정을 살아가는 배우가 됐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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