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우리의 식사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메뉴를 고르고, 배달앱 지도 위에서 음식의 이동 경로를 확인한다. 뜨거운 국과 밥을 차리는 것보다 포장지를 뜯는 데 더 익숙해졌다. 효율과 속도를 기준으로 보면 자연스러운 변화다. 그러나 그렇게 간편해진 식사는 이상하게도 더 피곤하게 느껴진다.
이 장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음식을 집는 방식이다. 젓가락 대신 빨대를 들고 감자튀김을 집어 먹고 있다. 다소 우스운 장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행동은 실제 화실의 작업 환경에서 비롯됐다. 한국화 재료인 한지는 기름기에 매우 민감하다. 손끝에 묻은 작은 기름기 하나만으로도 안료가 번지거나 종이가 얼룩질 수 있다.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허기를 달래면서도 손을 최대한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배달 음식에 꽂혀 온 빨대를 젓가락처럼 사용하는 방법이 생겨났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은 ‘투혼’이다. 거창한 승부의 언어처럼 들리지만 여기서 말하는 투혼은 훨씬 사소한 종류의 것이다. 배고픔과 작업 사이에서 버티려는 마음, 작업을 멈추지 않기 위해 사소한 불편을 감수하는 태도다. 먹어야 살 수 있고, 살아야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창작자의 노동은 종종 이렇게 단순한 반복 위에서 이어진다.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젓가락 문화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젓가락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익숙한 식사 도구지만 사실 매우 정교한 장치다. 두 개의 막대를 동시에 움직이며 손끝의 압력을 조절해야 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상당한 협응 능력을 요구하는 도구다.
같은 젓가락 문화권에서도 나라마다 그 형태는 다르다. 중국 젓가락은 길고 둥글며 주로 나무로 만들어진다. 큰 원탁 위의 음식을 멀리서 집어야 하는 식사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일본 젓가락은 짧고 끝이 뾰족하다. 생선 가시를 발라내기 위한 식문화가 반영된 형태다.
결국 한국의 쇠젓가락은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구에 가깝다. 다루기 어렵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손끝의 감각이 단련된다. 힘을 조금만 과하게 주면 음식이 미끄러지고, 힘이 부족하면 놓친다. 매 끼니마다 반복되는 작은 조절 속에서 손은 점점 더 정교해진다. 문화는 거창한 이념보다 이런 생활의 반복 속에서 몸에 새겨진다.
〈내숭: 투혼〉 속 빨대는 젓가락의 대체물이지만 동시에 젓가락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빨대를 젓가락처럼 쥐고 감자튀김을 집어 올리는 손끝에는 오래된 식탁의 습관이 남아 있다. 전통 한복을 입은 채 패스트푸드를 먹고, 젓가락 대신 빨대를 들어 올리는 이 장면은 어쩌면 지금 우리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준다. 오래된 문화와 오늘의 일상이 한 화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작업실에서 허기를 달래며 떠오르는 질문이다. 그러나 답은 거창하지 않다. 다음 붓질을 위해 한 입을 먹고, 손을 닦고, 다시 그림 앞에 앉는다. 그리고 또다시 빨대를 젓가락처럼 들어 올린다.
투혼이란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그렇게 오늘의 일을 끝까지 밀고 가는 그저 작은 버팀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대 한국인의 삶과 감정을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습을 ‘한국의 초상’이라는 시선으로 그려 왔다. EBS ‘해요화 해요’에서 댕기언니로 활동했으며 서울시와 희망브릿지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와 강연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글_김현정









